http://osdi.insightbook.co.kr/2013/10/24/04-cwryu.html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전설 같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누구나 오픈 소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시대가 됐다. 오픈 소스로 뭔가를 할 수 있으리라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고 리누스 토발즈 자서전 제목처럼 ‘그냥 재미로’ 오픈 소스를 다뤄온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은 오픈 소스 개발이 생업이 되어 즐겁게 일하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여전히 취미로 오픈 소스를 즐기며 산다. 이 인터뷰집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 ‘일부’를 다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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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배우지 않은 게 이 세계에서는 오히려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특이한 이야기네요. 인터뷰이들이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고 했거든요.
초등학교 때 MSX, 애플 II 등이 처음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부모님께서 컴퓨터가 게임기라는 걸 이미 알아채셨습니다. 사실 게임기였죠(웃음). 학교 다닐 때 유행처럼 전산실이 만들어져 베이직 등을 가르치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 말고는 컴퓨터에 대한 기억이 특별히 없습니다.
그럼 초중고 시절에는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았고 컴퓨터도 쓰지 않았군요.
예. 앞서 말한 전산실에서 베이직을 잠깐 재미있게 배웠던 건 기억이 나는데 컴퓨터를 사서 배운 내용을 가지고 뭘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집에도 컴퓨터가 없었고요.
예.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고등학교 때 형 컴퓨터로 타자 연습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특이한 이야기네요.
안 한 게 특이한 게 되네요(웃음).
그럼 대학교 들어가서 시작하신 건가요?
그렇죠. 1학년 때는 과를 정하지 않은 상태로 기초 과목만 하다가 2학년이 되면 학과를 정했는데 그냥 소질에 맞는 것 같아서 전산을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는데요. 카이스트 전산실이 그때만 해도 거의 다 유닉스였는데, 고전적인 스타일로 서버가 있고 터미널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전산실은 24시간 개방이었습니다. 거기에서 계속 컴퓨터 실습하고 놀기도 했었죠. 컴퓨터는 늦게 시작했지만 다행히 인터넷은 그때부터 빨리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카이스트는 제가 입학하기 전부터 (사실은 대한민국 최초로) 인터넷이 들어와 있었으니까요.
대학 들어가서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우기 시작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았나요?
글쎄요. 일단 타자 연습을 많이 해서 타자 속도는 꿀리지 않았습니다(웃음). 동기 중에는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상을 받은 친구들이 있긴 했는데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학년 때 학과를 정하지 않은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카이스트 학생 중에도 컴맹은 있었으니까요.
프로그래밍에 소질이 있다고 판단하신 근거는 무엇인가요?
당시 카이스트 전산실에서 밤새도록 터미널을 붙잡고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소질인가?’ 생각하다가 학점도 잘 나오고 해서 전공으로 선택했죠. 원래는 물리나 수학 같은 이론적인 분야를 공부하려고 했었는데 전산 점수가 더 잘 나오더군요(웃음).
당시 전산실 풍경은 어땠나요?
지금은 윈도 컴퓨터로 바뀌었는데요. 제 전 세대는 더 그랬을 것 같은데 저희 세대만 해도 전산실에 이른바 ‘죽돌이’가 몇 명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매일 얼굴을 보던 몇 명 선후배들과는 서로 알고 지냈죠. 지금은 기숙사 방에서 컴퓨터를 써도 되니까 그럴 필요는 없어졌죠.
그 터미널 화면에서 주로 뭘 하셨나요?
웹이 별로 유행하지 않던 시기여서 주로 유즈넷 바이너리 그룹을 돌아다녔습니다.
오픈 소스 활동은 대략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대학 1학년 때 컴퓨터가 처음 생겼는데 그때 형이 조립을 해주면서 유행이라고 슬랙웨어 리눅스를 설치해줬습니다(웃음). 대학 1, 2학년 때는 그냥 컴퓨터를 쓰기만 했고요. 그 후에 GNU 프로젝트 소프트웨어 중 Texinfo와 한글 LaTex을 연동해 한글 문서 포매팅하는 작업을 했던 게 맨 처음 했던 오픈 소스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정을 엄청나게 해서 어차피 반영될 수 없는 패치였고 몇 년 관리하다 그만두게 됐습니다. 이제는 문서 작성 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어 Texinfo 형식 문서는 실행되지도 않고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
데비안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특별한 목표 같은 건 없었고 쓰다 보니 참여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특별한 목표는 없고요(웃음). 처음에는 슬랙웨어를 좀 쓰다가 ‘공부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리눅스를 거의 안 썼던 적이 있습니다. 1996년 아니면 1997년 즈음에 인터넷으로 업데이트되는 유일한 배포판이 데비안이었습니다. 그 기능 때문에 데비안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데비안 프로젝트의 특징 중 하나가 메인테이너 제도인데 메인테이너 수가 늘면서 생기는 문제는 없나요?
메인테이너 제도에 잘못 설계된 부분도 있습니다. 제가 참여했을 때가 150명 정도 됐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000명 가까이 됩니다. 기본 설계가 ‘패키지는 담당 메인테이너가 다 처리하고 우선권을 가진다’에, 만약 이의나 분쟁이 있을 때는 기술 위원회에서 처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기술 위원회까지 가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형식상이었죠. 최근에는 기술 위원회까지 가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는데 의존하는 패키지에 대해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가 의견을 제시했는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서 기술 위원회로 가서 결정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패키지가 공동 소유물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 경우에는 사용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지만 제가 관리하는 거의 모든 패키지를 권한이 있으면 다른 사람도 업로드할 수 있게 바꾸었습니다.
현재 규모가 적정하다고 보시나요?
패키지가 많아서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1000여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한두 개 패키지만 관리하고 있는데 잘하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메인테이너는 저 혼자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다른 개발자들도 부담 없이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의 업스트림 버전과 배포판 탑재 버전의 차이가 벌어지는 현상은 어떻게 해결되는 게 좋을까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 의존성이 많이 걸려 있는 프로그램은 되도록이면 팀으로 여러 명이 관리하게 하기도 하고요. 물론 자발적으로 하는 거라서 개인이 패키지를 붙잡고 있는 경우는 패키지 버전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문제가 아직도 있습니다. 팀 체제로 가는 게 올바른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한국어 패키지들도 팀 체제로 가고 싶은데 팀이 없네요(웃음).
그 외에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나요?
그놈과 맞춤법 검사 프로젝트가 있고 그 외에 3D 프린팅 관련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패키징 등의 작업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놈의 경우 처음 GTK+로 개발할 때 습작으로 카드 게임을 만들었는데요. 그때 그놈 프로젝트 창시자 미겔(Miguel de Icaza)이 그 게임을 그놈 패키지에 넣겠다고 했고 그러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번역만 하고 있습니다. 그 카드 게임은 지워졌고요(웃음).
번역 작업의 경우 시간이 많이 들 텐데 시간은 어느 정도 할애하시나요?
여가 시간에 하기는 하는데 일단 소프트웨어 발표 일정에 맞춰야 해서 시간을 일부러 내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큰 부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놈이나 KDE 같은 오픈 소스 데스크톱이 주목을 받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인정해야 하는 현상일까요?
데스크톱보다 웹 등 다른 분야에 더 관심이 많아진 이유는 아마 그 분야 산업이 커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메일 소프트웨어가 웹 메일 서비스로 대체되는 것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10~20년이 지나도 대체하지 못할 분야는 여전히 있을 테고요. 그놈을 쓰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놈 3는 발표되고 나서 여러 가지 혹평을 들었는데….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점을 꼽자면 이전 버전에 있던 기능을 지워버렸다는 것인데요. 과거 사용자들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기능들이 없어져 버리면서 문제가 됐었죠. 그놈 아시아 콘퍼런스에서도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아직도 주요 기능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지금 3.8인데 “그걸 왜 2011년에 만들지 않고 지금 만들고 있냐”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하죠. 이주 과정을 잘못 잡은 것 같습니다. 적응할 수 있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이 예전 버전의 기능을 지워버리고 부족한 상태로 발표했으니까요. 역설적으로 최근 데스크톱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려다 보니까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기존 운영 체제를 따라한다거나 인터넷 서비스와 급격한 연동을 시도하다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요. 나름대로 그 안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를 하고 있는데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3D 프린팅에 관심이 생긴 계기는 무엇인가요?
일단 지금까지 다니던 직장들이 대부분 셋톱 같은 장비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려면 여러 가지 오픈 소스를 잘 가져다 쓰면서 전자 회로 구입, 조립 등도 잘 알아야 하는 장벽이 있는데 저는 다행히도 직장이 그 분야라서 비교적 쉽게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3D 프린터로 뭔가를 만드는 것보다는 3D 프린터 자체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3D 프린터를 만들고 나서 만들었던 것들도 3D 프린터 관련 부품이었고요.
현재 오픈 소스 3D 프린터는 개인이 접근하기에 어떤 상황인가요?
질에 따라 다른데 키트 같은 건 싸게 구입하면 300~400달러짜리도 있고요. 많아도 100만 원은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드웨어 정보는 보통 숨기는 게 관행이었던 것 같은데 하드웨어를 오픈 소스 형태로 만들려는 움직임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하드웨어 분야에 변화가 왔다기보다는 또 다른 분야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회사들의 방식은 변하지 않았고요. 사실 어찌 보면 옛날에도 오픈 소스 하드웨어는 있었죠. FM 라디오 회로도 같은 건 알려져 있었으니까요. 요즘은 오픈 소스 하드웨어를 사업으로 하려는 회사들도 있기는 한데 아직까지는 취미가를 위한 장치로서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고 다른 분야로 확대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두이노도 그렇지만 많이 보급될수록 소프트웨어가 할 일도 많아질 것 같습니다. 아두이노를 보면 같은 플랫폼이 여러 군데 쓰이다 보니까 교육하기가 쉬워지고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기도 수월해진 면이 있습니다. 요즘 미대에서도 전자 회로와 프로그램을 가르치는데요. 지난해에 알게 된 한 미국인 친구는 미대 교수인데 전공이 로보틱스라고 하더군요. 특히 아두이노는 그런 데 특화되어 있어서 다른 분야로 확대된다면, 같은 소프트웨어가 여러 형태의 기기에서 돌아갈 테고 앞서 말한 장점이 두드러지겠죠.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가 생길 테고요.
최근 맞춤법 검사 프로젝트를 비롯해서 지금까지 한글 관련 작업을 많이 해오셨는데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의 한글 환경에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다면.
한글 환경이란 것이 어찌 보면 사소한 것들인데요. 사소하고 불편한 것들이 생기면 의사소통으로 개선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엊그제 회사에서 TV 수신 카드를 세팅하는데 리눅스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 중에 위성이나 지역별이나 위성 또는 지상파 주파수 정보를 담고 있는 파일이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채널이 몇 번인지 찾는 일이 있었는데 온갖 나라의 주파수 정보가 있었는데 한국은 없더군요. 그래서 구글로 검색해서 주파수 정보를 입력했는데요. 결정적인 게 있다기보다는 이렇게 사소한 게 여러 개 모여서 불편함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개선해야 할 점이라면 이런 문제를 발견할 때마다 고쳐나갔으면 하는 점입니다.
맞춤법 검사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렀나요?
데이터가 많이 모자란 상태입니다. 기술적으로 뭘 만든다기보다는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데요. 특히 합성어 같은 것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규칙 기반 처리는 굉장히 쉬운데 문맥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것들이 어렵습니다. 실제로 다른 프로그램들을 보면 무턱대고 데이터를 밀어 넣어서 만든 것들도 있고 무조건 붙여 쓰면 맞는 걸로 처리하는 것들도 있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어떻게 정의를 하면 데이터가 너무 커져서 프로그램이 느려지는 부분이 있어서 철자 검사 프로그램인 hunspell의 소스 코드를 수정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손은 못 대고 있습니다.
오픈 소스 활동이란 게 중간에 그만두기가 쉬운데 꾸준히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의무감이나 목표가 없어서 오히려 오래 하는 것 같습니다. 여가 시간에 하는 거라서 큰 부담도 없고요.
외국 사례들을 보면 오픈 소스 개발자들이 점점 회사에 전업으로 고용되는 추세인데 오픈 소스 초창기의 낭만을 유지하시는 것 같습니다.
회사 비중이 커지기는 했지만 아마추어도 아직 많습니다. 물론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들은 회사 직원들이 대부분이겠지만요. 특히 데비안 개발자들은 회사 일로 참여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참여자 직업들을 보면 소방관도 있고요(데비안 개발자 케빈 코이너는 현재 뉴욕 그리니치에서 소방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데비안 개발자들에 대한 재미있는 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나라별로 인구당 데비안 개발자 수를 대강 살펴보면 상위에 있는 나라들이 핀란드, 스웨덴처럼 일상이 여유 있는 곳이 많더군요. 한국도 앞으로 복지 사회가 되면 오픈 소스 개발자가 많아지지 않을까요?
오픈 소스 라이선스 위반 사례를 알리는 활동을 하신 적이 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하드웨어 업계에 있다 보면 그런 사례를 많이 보게 됩니다. 대충 보면 그냥 일로만 오픈 소스를 만지는 사람이 많아서 별 생각이 없습니다. 가져다 쓰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도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러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 어떤 식으로 위반되는지도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별 성과는 없었습니다.
오픈 소스 라이선스 위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유는 뭘까요?
위반해도 잘 걸리지 않고 걸리더라도 제도적 장벽이 있어서 지구 반대쪽에 있는 저작권자가 찾아와서 민사 소송을 걸 가능성은 거의 없죠. 그만큼 한국에서 관련 산업이 발전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복잡한 기기를 많이 만드니까 오픈 소스 운영 체제가 더 필요하게 되고 오픈 소스 라이선스를 위반하는 사례도 늘게 됩니다. 요즘은 중국에서도 위반이 심하고요.
성과가 없었다고 하셨는데 요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제가 저작권자도 아니고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활동을 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SFLC(Software Freedom Law Center) 등 몇 군데에 몇 번 자문을 구해봤는데 웬만한 회사들의 위반 사례는 다 파악하고 있더군요. 아마 제도적 장벽이 없어지면 이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라이선스 문제에 관해 아는 사람은 늘어난 것 같습니다. 칩셋 SDK만 봐도 요즘에는 오픈 소스인 부분과 아닌 부분을 정확히 구분해 놓고 라이선스도 명시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 같습니다.
현재 활동하시는 프로젝트에 참여가 저조하다고 하셨는데 가장 큰 진입 장벽은 무엇일까요?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래 문명은 ‘잉여’가 시작했다는 말도 있잖아요(웃음). 원인을 따지고 보면, 흔히 사람들이 “영어를 못해서” 또는 “한국어로 된 정보가 없어서”라고 이야기하는데 유럽 사람들도 영어를 잘하지는 않거든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데비안 프로젝트 개발자 수 상위를 핀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들이 차지하는 걸 보면 여유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삶의 무게에 너무 눌려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충분한 ‘잉여’ 시간이 주어진다면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별로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요. 예전에 CCTV 관련 일을 할 때 CCTV와 관련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누군가 만들더군요. 그 후 의욕이 사라졌고요(웃음). 요즘에는 3D 프린터 관련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있습니다. 3D 모델이 있으면 모터 움직임으로 바꾸는 게 있는데 현재 조금 불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간소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서요.
‘믿을 개발자는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예전에 어떤 개발자가 자기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면 일주일에 적어도 열 시간은 써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일단 자기가 시간을 많이 써야지, 코드 대충 쓰고 홍보하면 사람들이 모일 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제대로 된 프로젝트도 아니고 잘될 수도 없습니다.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려다 코드 리뷰나 비평 같은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개발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담력(?)을 키우는 비결이 있다면.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일 텐데 성격이 나쁜 사람들은 꼭 있습니다. 무뎌지는 방법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절한 프로젝트도 있으니까요.
오픈 소스 세계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꼽는다면.
코드를 잘 짜야 하는데요. 물론 코딩을 잘 못하더라도 오픈 소스 프로젝트는 대체로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라서 열린 마음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찾아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시작하는 개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동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이 일을 길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개발자는 암울하다”라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결국에는 요즘은 50대 개발자들도 나오기 시작했고 충분히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될 수 있는 기회도 있고요.
어떤 모습의 개발자로 늙어가고 싶으신가요?
앞으로의 모습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요. 돈을 벌든 못 벌든 개발은 계속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이 소개: 류창우
리눅스 배포판 데비안의 패키지 개발과 그놈 프로젝트 번역에 1998년부터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다. 본업으로 여러 가지 임베디드 제품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픈 소스 프로젝트는 본업과 별도로 여가 시간에 진행하고 있다.
류창우 님 사진은 안 보이기에 구글에서 찾아보았습니다.
https://kosslab.kr/koss/opensft/introduceView.php?ordinal=4&idx=58
참고하셔요.